31

2022-Aug

어떤 거래

작성자: 정명 조회 수: 15

"벨리알." 천사가 한때 동족이던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에노스!" 높은 탑의 꼭대기층에 선 청년이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을 가진 남자를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 보이네. 고귀한 천사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왕림하셨으니 인사는 나눠야겠지?"  해사하게 웃은 청년이 손을 뻗는 순간 그들은 응접실에 가까이 마주앉아있었다. "조금 바쁘지만 너를 상대해 줄 시간 정도는 있어," 벨리알이 긴의자에 몸을 눕히듯 기대앉으며 말한다.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어?" 에노스는 마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상냥하게 말을 골랐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저기, 내 작은 형제를 위해 부탁 하나 하러 왔는데." 벨리알의 입꼬리가 삐딱해졌다. "네 형제가 어디 있다고?" 에노스가 똑바로 앉아 무릎을 모으고 양 손바닥을 우호적으로 내밀었다. "가나안, 그애가 형벌을 받고 있다고 들었어...걔를 용서해 주면 안 될까?" 강대한 천사의 공손한 제스처를 구경하던 벨리알의 입술에 미소가 스쳤다. "음..그녀석이라면 일 년간 근신을 명령했지. 적당한 체벌이 있긴 해도 일 년 후면 풀어줄 거야. 네가 대신 용서를 빌 만한 일은 아냐." 마왕은 잔혹하지만 기분이 허락하는 때라면 충분히 친절하다. 수천 년 전 갈라섰으나 에노스는 그를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 두고보기엔 내 마음이 안 좋아. 부탁이야." 벨리알의 고개가 조금 기울어졌다. "맨입으로?" 죄 지은 악마를 벌하는 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악마왕의 정당한 권한이었기에 에노스는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당연히 아니지, 내가 가능한 거라면 뭐든 해줄게. 타천하라는 것만 빼고..." 말끝에 멋쩍은 헛웃음을 붙이자 벨리알도 마주 눈을 휘었다. "네가 지상에서 거렁뱅이 행세하고 다닌 것이 오천 년 조금 넘었나. 줄 수 있는 게 뭔데, 그 날개라도 하나 꺾어줄 건가?" 천사가 약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거면 될까?" 이쯤해선 약간 어이없는 기분이 된다. "...네 날개 따윈 나에게 쓸모도 없고...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왜 그래? 그녀석도 납득하는 벌이야. 짧은 불장난인 거 감안해서 나도 가볍게 봐준 거야. 네놈도 곱게 돌려보내줄 때 돌아가." 마왕이 말을 자르고 일어났다. 에노스가 급히 몸을 일으켜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도 할 테니까. 응? 벨. 그애가 널 미워하게 만들지 말아..." 에노스는 악마의 앞에서 무릎을 땅에 대고 애원하듯 웃어보였다. 마왕은 아직도 악마답지 못한 가나안을 이번엔 확실히 재교육하고자 마음먹었었지만, 절실해보이기까지 하는 천사에게 조금 심술궂게 굴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노스. 다리라도 벌리련?" 그것이 마왕에게는 잠깐의 여흥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이나 하늘색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는 것은 기껍다. 벨리알은 자기 허리께에 몸을 낮춘 천사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그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들어올렸다. "저기 책상 잡고 엎드려."
 
천사는 가죽이 씌워진 고풍스러운 책상에 손을 짚고 몸을 숙였다. 따로 말이 없었기에 옷을 벗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자니 뒤에서 한 손이 등을 밀었다. 에노스는 순순히 책상에 뺨을 대고 엎드렸다. 에노스의 바지만 반쯤 끌어내린 벨리알이 작고 탄탄한 엉덩이 사이로 차가운 향유를 조금 부었다. 곧 딱딱한 막대가 구멍에 밀어넣어졌다. 아마도 펜대 같다고 생각하는 천사가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그것은 안쪽을 가늠해 보듯이 조금 휘적대고 뽑혀나간 뒤 벨리알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에노스는 생소한 감각과 부끄러움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좁아터졌네." 그 내용과는 반대로 즐거운 듯한 말투가 코웃음 소리와 함께 에노스의 뒷목에 닿았다. 벨리알은 손가락 수를 늘려 계속 아래를 넓혀냈다. "아...시간이 없는데." 약간 조급한 손이 내벽을 벌리다 떨어지고 이윽고 어림짐작으로도 손가락 몇 개보다 훨씬 굵은 남성기가 닿아오자 에노스의 목덜미에 솜털이 일어섰다. 그것이 아직 좁은 안을 벌리고 쑤셔박혔지만 손가락 두어마디만큼도 채 들어가지 못하자 벨리알은 에노스의 하의를 다 벗겨내고 다리 한쪽을 접어 책상 위에 올리게 했다. "힘 빼, 응?" 에노스는 아픔에 이를 악무는 와중에도 그가 자신에게 욕정한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그가 악마이기 때문만은 아닐 텐데. 악마란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끝도 없이 밀고들어오는 것은 몸을 반으로 쪼개놓는 것 같았다. 툭, 툭, 하고 살이 뜯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힘 좀 빼라니까." 어쩔 수 없네, 하고 중얼거리며 벨리알의 것이 빠져나갔다가 곧 빠르게 다시 짓쳐들어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 들어온 것 같지는 않았다. 
 
벨리알은 곧 물러나 묻어나는 체액을 닦아내고 다시 단정한 차림이 되었다. 에노스가 흐트러진 몸을 일으켜 추스르고 있자 벨리알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흥미로운 듯 에노스를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처녀인 줄 알았으면 당장 이렇게는 안했을 텐데. 미리 말하지 그랬어." 에노스는 저 마왕 벨리알이 딱히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처음에 이미 알아차린 것이 분명한데, 즐거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던가? "별로...괜찮아. 이걸로 된 거야?" 벨리알은 아주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이런, 에노스. 고작 이거 한 번으로 그녀석의 벌을 상쇄할 수 있을 줄 알았어?" 천사는 당황하지는 않았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대신 형벌을 받아내기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왔기에 왕이 크게 기분상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던 참이었다. "음...그러면 얼마나? 씻게는 해 줘..." 벨리알은 뭐가 재미있는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하하하! 아아...에노스. 일단 난 정말 바빠서 이제 진짜 가봐야겠어. 씻으려면 저쪽이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벨리알이 킥킥대며 방을 나서면서 덧붙였다. "뭐, 못하겠으면 가도 돼." 마왕이 바쁘다는 것은 언제든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지금만은 잘 된 일이 아닐까 하며 천사는 지끈거리는 아래를 씻었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꼬박 하루 정도 지난 후였다. 에노스가 느끼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지옥은 천사의 감각을 어느 정도 흐렸다.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에노스는 커다란 침상만 덩그러니 있는 넓은 침실에 이끌려 갔다. "솔직히 너 너무 못하는데 처음이니 봐줄게." 천사는 잠시 고맙다 해야 할지 고민한다. "채찍 같은 건 안 쓸거지만 가끔 엉덩이는 좀 때릴 수도 있어." 당연하게도 설명보다는 자신의 반응을 보며 즐기려는 것이겠지, 하고 짐작했다. "걱정마, 그녀석 남은 벌을 네가 다 받으라곤 안 해. 내가 질리면 끝. 뭐, 길진 않을 거야. 알지?" 스스로 변덕스러움을 인정한 벨리알이 재잘거렸다. "하나만 기억해. 끝날 때까지 '싫다'고는 하지 마. 그 말이 나오면 이건 전부 무효야." 에노스는 간신히 한 마디 대답했다. "그래." 벨리알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밖으로 나가 무언가 들고 왔다. "너만한 투천사를 입만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안전장치 하나만 더 하자." 그것은 반달 모양으로 된 족쇄 같은 물건이었다. 에노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걸..." 하지만 자의로 여기까지 온 이상 거부할 수는 없었다. 에노스가 말없이 오른팔을 내밀자 벨리알이 족쇄의 곧은 부분을 그 팔꿈치에 박아넣고 둥근 테 부분을 닫았다. 관절을 뚫은 족쇄가 단단히 잠기고 이어진 사슬이 침대기둥에 묶였다. 
"처녀에게 함부로 했으니 이번은 좋게 해주지." 벨리알은 에노스를 침대에 네 발로 엎드리게 했다. 쓸 수 없게 된 오른팔을 늘어뜨린 채 짐승처럼 엎드린 에노스가 왼팔로 몸을 지탱하고 눈만 굴렸다. "뭐가 좋을 것 같지 않은데." 악마는 앞일을 짐작하지 못하는 천사를 보고 씨익 웃었고 천사는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데서 느껴지는 남의 숨결에 경악했다. "난 한번 한 말은 지키거든." 생전 처음 아래가 핥아지는 감각은 생경하고, 허리를 세울 수 없었다. "벨, 힉..." 간신히 거부의 말을 삼켜낸 천사가 앞으로 기어 빠져나가려 했지만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회음을 누르며 간지럽히던 벨리알의 혀끝이 놀라 움츠러든 구멍을 헤집어 열고 안을 찔러들어왔을 때 에노스는 하얗게 된 머리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직감했다.
 
"아직 피 맛 나네. 많이 찢어졌구나?" 널부러진 채 구멍이 풀려 벌렁거리고 선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천사를 보며 마왕은 그런 말이나 했다. 에노스는 숨을 몰아쉬며 악마가 자신을 돌려눕히고 다리 사이에 자리잡는 모습을 흐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마왕과 뒹굴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평생 없었는데 이런 꼴로 지옥 밑바닥에 누워 있다. "다 넣을 거야." 마왕의 선언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천사는 자신의 말과 족쇄에 꿰여 거부할 수 없는 몸인데도 말이다. "그러시죠, 전하." 누운 에노스 위에 올라앉아 그 머리를 쓰다듬은 벨리알이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로 입을 맞춰왔다. "너도 좀 즐겨야 하지 않아?" 태초부터 인간들 틈에서 살아왔지만 그 오랜 시간 한번도 그들과 정을 통한 적은 없었던 천사는 입맞춤조차 낯설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왼팔로 벨리알의 목을 감았다. "착하다." 받아주는 것마저 서투른 천사가 속절없이 휘둘리며  내벽을 사정없이 헤집어 벌리는 악마의 손가락에 겨우 적응해갈 무렵 문득 몸이 크게 퍼득였다. "아..!" 악마는 천사를 자기 몸으로 내리누르고 그의 쾌락점을 짓뭉갰다. "긴장 풀어." 에노스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자 벨리알은 손끝에 도톰하게 만져지는 살점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좋지?" 천사는 몰아치는 감각에 대답도 하지 못했고 얼마 못 가 자기 가슴과 아랫배를 백탁액으로 적셨다. 에노스의 좆에 마주 비벼지면서 함께 젖은 벨리알의 것이 대신 밑에 들어찼다. 공들여 핥아 풀었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부피가 입구 주름을 팽팽히 벌리며 안을 빠듯하게 채우자 흰 액을 토하며 꼿꼿이 일어났던 에노스의 성기가 금세 힘을 잃고 다시 늘어졌다. 찢어졌던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듯 뜨끔한 아픔이 느껴졌지만 그런 것을 신경쓸 틈도 없었다. "좀 더 물어야지.." 천사가 새파래진 얼굴로 고개를 내저은 것은 조금쯤 불가항력이었다. "...잠깐..만." 이미 한계까지 들어온 것 같은데 더라니? 에노스는 축축해져 번질거리는 눈을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각 같은 뱃거죽 밑으로 무언가 심긴 듯 약간 볼록했다. "네 거랑 많이 차이나는 크기도 아니니까 겁먹지 말고," 벨리알이 귀엽다는 듯 한 손으로 에노스의 눈을 가리고 입을 맞추며 허리를 약간 물렸다. 받는 쪽이 느끼기에는 내장이 함께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벨리알이 허리를 쳐올리자 에노스의 목에서 신음이 튀었다. "윽, 흑..." 에노스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 법한 작전을 일곱 개쯤 떠올렸지만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끊어져나가는 고통에 자신의 위에 있는 악마의 목을 꺾어놓으려던 몸을 다시 침상에 파묻는 수밖에 없었다. 벨리알은 그런 노력을 읽어냈는지 픽 웃으며 에노스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재차 허리를 치댔다. 다 넣겠다 했어도 끝에 다다라 막힌 곳은 당장 열 수 없을 것 같아 악마는 간신히 좁게 트인 길을 찢어놓지 않고 여는 데만 신경쓰기로 했다. 더 욕심을 내보자면 악마의 좆을 그 붉고 예쁜 입술로 빨아주는 것도 보고싶긴 했으나 그 긴 세월 동정이었다는 고지식한 천사가 이 정도를 받아내는 것도 큰 발전이었고 스스로 매달려온 천사라도 너무 심하게 다루면 사이가 틀어지겠지, 또 기분좋게 잘 해주면 나중에도 안겨 줄 지 누가 알겠는가. 제 물건 둘레만큼 뻥 뚫려 다물지 못하는 천사의 아래를 보자니 벨리알은 지금도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
 
벨리알에게 세 번째 안긴 끝에 그의 좆을 아래로 모두 "물 수 있게" 되고 나서도 깊숙한 뱃속이 짓이겨져 뒤틀리는 듯한 아픔과 지끈거리는 내벽, 붓고 찢어져 따갑고 쓰라린 입구나 비명으로 쉰 목 같은 것들은 혼자 참아내야 하니 죽을 맛이어서 에노스는 마왕이 빨리 저에게 질려버리기만을 바랐다. 갇혀 있는 동안 천사는 도저히 하루를 가늠할 수 없었다. 기다리다 세 번을 잠들고 깨어나도 마왕이 오지 않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상당히 짧은 시간만에 돌아오기도 해서 그의 왕래로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사흘이 지난 것 같기도, 열흘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천사는 까슬하게 수염이 올라온 턱을 매만지면서 일주일 쯤 흘렀다고 결론지었다. 천사의 물화체는 물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었지만 숨을 쉬어야 하며 수면을 취해야 했고 평범한 인간보다는 훨씬 잘 회복되는 몸이지만 지옥에서라면, 지옥에서 난 상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러니까 에노스도 별로 알고 싶었던 사실은 아니었다. 어떤 정신나간 천사가 지옥에 찾아와 악마 하나를 구하겠다고 마왕에게 제 몸을 내준단 말인가. 물론 그 마왕이 고문이나 폭행도 하지 않고 뭇 악마들에게 내보이면서 수모를 주지도 않으며(기실 이것이 가장 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상처도 안 내면서 천사를 봐주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담보잡힌 오른팔은 족히 일 년은 쓰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고 찢긴 아래도 그냥은 낫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형벌을 받고 있을 가나안도 비슷한 처지일 듯했다.
 
 벨리알은 자주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밖이 보이지 않았고 보인다 해도 태양이 없는 땅이라 정확히는 몰라도 천사의 짐작으로는 아마 밤에 오는 것 같았다. 알 길은 없으나 의외로 성실한 군주인가, 하며 에노스는 주어진 물 한 잔을 마실지 말지 고민했다. 팔에 꿰인 악마의 족쇄가 천사의 피를 조금씩 빨아내고 있었지만 지옥의 물은 너무 맛이 없었고 이런 물이나마 계속 주어지는 건지 알 수 없기도 했다. 감금되고 묶인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찾아올 자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는데 나신에 덮을 담요조차 없어 천사는 날개 하나를 펴서 몸을 덮었다. 태양이 없는 땅은 차갑고 추웠다. 
 
헐벗은 몸에 자기 날개를 덮고 곯아떨어진 천사를 본 벨리알이 가만히 침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굳이 잠든 이를 깨워가며 좆질을 할 만큼 무뢰배는 아닌지라 그저 고개를 기울여 날개 아래로 반만 드러난 무방비한 얼굴을 감상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는데도 간밤이 많이 힘겨웠는지 예민한 전사가 깨지도 않았다. 아니면 정말로 마왕의 손에 모든 걸 내맡기고 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벨리알은 살짝 찌푸려진 에노스의 미간을 매만졌다. 천사의 한쪽 눈만 천천히 반쯤 열리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뭐 묻었어?" 잠이 덜 깬 천사가 콜록이며 목을 가다듬었지만 별 소용은 없는 듯했다. "아니, 더 자." 에노스가 부스스 몸을 일으키며 날개를 접었다. "해, 난 괜찮아..." 전통적으로 괜찮지 않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왜, 몸이 달았어?" 벨리알이 침상에 드러누워 손짓했다. "눈곱이나 떼고...이리 와." 천사가 떨떠름하게 악마를 쳐다보다가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끌고 다가가 그 옆에 누워 그를 마주보았다. "얘기나 하자, 에노스." 몸으로 안 때우는 하룻밤 쪽이 천사에게는 이득일 것이다. "무슨 얘기?" "너 같은 녀석이 그 동안 지상에서 굴렀는데, 정말 널 아무도 안 따먹었는지 궁금해서." ...분명 이쪽이 이득일 것이다. "어...다 돌려보냈지." " 5천 년 동안, 능력도 안 쓰고?" 나 같은 녀석이 뭘 어쨌다는 건지, 어쨌든 에노스가 공손히 대꾸했다. "내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줄 알아." 신기한 것을 보는 눈으로 벨리알이 시선을 마주쳤다. "그런데 내겐 그걸 왜 그리 쉽게 내주지? 그런다고 가나안 녀석이 널 따라서 천국에 돌아갈까?" 싸우자는 투는 아닌 것 같았지만 헐벗고 누워 할 이야기로는 이상했기에 천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돌아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걸 위해서 하는 건 아니고..." 아니, 애초에 저가 냅다 다리를 벌리라 하지 않았던가? 에노스는 팔에 꿰인 족쇄를 만지작거렸다. "다른 길이 있으면 선택했겠는데 이것뿐이라면 굳이 고집할 건 아니야." 벨리알이 흐음, 하며 딴 소리를 했다. "에노스, 노래 해봐." 정말 뜬금없고 따라잡기 힘든 흐름이라 에노스는 어쩔 수 없이 되물었다. "...무슨 노래?" "뭐, 아는 노래 아무거나." 할 말은 많았으나 천사는 당장 거부를 할 수 없는 을의 신분이라, 미적미적 일어나 앉아서 꽉 잠긴 목을 이리저리 풀었다. "큼... 비 오는 일요일 아침 난 여기 지루한 방에 앉아..." 잔뜩 쉰 목은 음정을 잡기는 커녕 제대로 소리가 되어 나오지도 않아 에노스가 난처한 얼굴로 벨리알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계속하라는 듯 살짝 턱짓해 보일 뿐이라 엉터리 레몬 트리는 1절 끝까지 계속 이어졌다. 벨리알은 용케도 후렴을 듣고는 곧잘 따라했다.
 
"선택지가 있어. 네가 직접 올라타고 움직이는 거, 아니면 입으로 하는 거. 뭐 할래?" "...하나만 시키는 거 맞지?" 천사가 약간 지친 목소리로 질문했고 마왕이 이내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너, 악마 하면 잘 하겠다." 마왕이 귀엽다는 듯 천사의 머리칼을 쓰다듬었고 에노스는 별 대꾸 없이 기지개를 폈다. "둘 다 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마왕의 세 번째 다리 같은 성기를 입에 담는 것은 입을 벌려 가늠해볼 것도 없이 대충 봐도 무리였고, 언젠가 기어이 시킬지 몰라도 당장은 사양이었다. 하지만 시키는 내용을 보아하니 악마는 오늘 천사에게 봉사받고 싶은 모양이었고, 에노스는 악마가 원하는 것을 인간들이 '기승위'라고 부른다는 것까지 기억해 냈다. 입으로나 아래 구멍으로나 상당히 무리가 있지만, 며칠 동안 아래로 이 물건을 받아냈으니 이 쪽이 현실적이었다. 에노스는 침상에 드러누운 벨리알의 침의 자락을 한 손으로 헤쳤다. 그리고 곧 문제점을 하나 발견했다. 천사는 남의 성기를 만져본 적이 없었고 그것이 악마의 좆이 되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자기 것도 그런 식으로 만져본 일이 거의 없는데 오늘 어떻게든 그것을 세우고 심지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넣기까지 해야 했다. 에노스는 그 위를 손바닥으로 살그머니 덮어 보았다. 몇 번을 관계하긴 했으나 전부 벨리알이 이끈 것이어서 마왕의 하체를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간들 말에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했던가? "벨..." 벨리알이 얄미울 만큼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갸우뚱했다. "왜?" 가증스러운 얼굴로 하나도 도와주지 않을 모양이라 에노스는 조금쯤 비굴해지기로 했다. "기름 같은 거 써도 될까?" 마왕이 낄낄 웃더니 옆에 벗어둔 옷에서 플라스틱 튜브 하나를 꺼내 건넸다. 익숙한 언어로 윤활제라 쓰여 있었다. "지상 물건이 있어?" "내 땅이고, 드나드는 악마들이 있으니까." 천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 대범한 척 해도 마왕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손으로 구멍을 풀어내는 일은, 그런 일과 너무 동떨어져 살아온 천사가 맨정신으로 하기에는 혹독한 것이었다.
 
"벨, 눈 감아주면 안 돼...?" "안 돼." 별 기대는 없었지만 순간 망설임도 없이 즉각 단호한 대답에 천사는 전의를 잃고 그냥 제가 눈을 감기로 했다. 마왕의 허벅지에 올라앉아 손에 젤을 덜어 자기 아래를 벌리는 진귀한 꼴을 하고는 에노스가 눈을 질끈 감았고 벨리알은 그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자기 몸에서 자기 손으로 처음 만져보는 곳은 꽤나 부드러운 감촉이었지만 쓰라렸고, 얼마전까지도 혹사당한 내장에는 아직 동통이 남아있어 에노스는 조금 아픈 신음을 흘렸다. "아, 참으려고 했는데 진짜 꼴린다 너." 마왕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 에노스가 눈을 뜨자 반쯤 힘을 받아 하늘로 곧추서있는 마왕의 좆이 보였다. 조금 찌그러지는 에노스의 표정을 보며 벨리알이 소리내 웃었고 에노스가 다시 눈을 꽉 감았다. "왜, 네가 세우는 수고를 덜어줘서 좋지 않아? 결국 네가 세운 거지만." "입으로 하게 하려고 했겠지." "아, 아쉬워라." 놀림당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욕정하는 마왕은 이상하다. 에노스는 마왕의 것이 얼마나 큰지 의식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벨리알의 성기 위에 구멍을 맞추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수치스러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 덜 열린 곳으로 물자 뻑뻑했지만 몇 번 했다고 처음처럼 몸이 쪼개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기 몸무게를 실으니 끝도 없이 들어차는 것 같았고 내장이 밀려올라오는 느낌에 에노스는 절반 정도 넣다가 멈춰서야 했다.  "너무 조인다. 잘라먹겠어." "그래버릴지도 모르니까 말 시키지 마." 천사의 강인한 다리가 무릎꿇은 채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곤 마왕이 입을 다물었다. 에노스는 팔에 걸린 사슬을 당겨 흔들리지 않게 다른 손으로 팔과 함께 감싸쥐고 몸을 조금 들어올리더니 완전히 내려앉았다. "헉..." 뱃속이 찍혀 명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아픔에 에노스가 엉덩이를 조금 들었지만 긴장해 버린 몸은 물린 것이 잘 빠지지도 않았다. "살살 해, 다칠라." 그러면서도 벨리알이 누운 채 허리를 툭 쳐올렸다. "아, 못 참겠네." "벨...! 내가...할게." 벨리알은 친절히 조금 더 기다려주기로 했고 에노스는 어쩔 수 없이 천천히 엉덩이를 들었다 내리기를 시작했다. 겁이 나는지 엉덩이를 다 붙여오지는 않았지만 자기 것에 못지 않게 커다란 천사의 성기가 배 위에서 아무렇게나 흔들리는 것도 절경이라 그런대로 참아줄 만 했다. 천사는 허리를 조금 틀어 자기가 느끼는 곳을 스스로 찌를 줄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 본 적 없는데 이건 아쉬울 것 같네."
"...뭐가?"
한 손으로 마왕의 배를 짚고 엉덩이를 치대던 천사가 조금 늦게 대답했다. 혼자 떠들게 두고 싶었지만 역시 마왕의 심기에 거슬려 좋을 것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아쉬운 것은 이쪽이었다. 마왕은 자기 배 위에 흔들리는 천사의 좆을 살짝 쥐고 두 손가락 끝으로 비볐다. 
"이걸 그냥 안 쓰기도 낭비 같거든."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마왕의 음담이지만 그 뜻은 곧바로 알아들은 천사가 조금 휘청거리다 주저앉았다.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마왕의 분신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찌 들으면 자신에게 흥미가 떨어져 간다는 것 같기도 한데 또 다르게 가지고 놀고 싶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난 안 써도 괜찮은데."
"에노스야. 내가 많이 봐주고 있는데, 도저히 늘질 않는구나." 마왕이 손바닥으로 천사의 한쪽 엉덩이를 후려쳤다.
"얼마나 더 기다려줘야 하나? 노력하는건 알겠다만 이래가지고 언제 날 만족시키려고." 천사가 신음하며 맞은 곳을 문질렀다. 아무리 몰라도 마왕이 사정해야 일이 끝나는 것은 눈치만 있으면 안다. 하지만 천사도 몸이 있는 대로 축난 상태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잠깐...내가 잘 할게. 응?" 천사가 재빨리 허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마왕이 몸을 일으켜 그대로 자세를 뒤집었다. 키도 체격도 천사가 더 큰데 마왕은 손쉽게 천사를 좆에 꿴 채로 들어눕혔다. "이건 마저 끝내고." 사슬이 감겨 꼬이지 않도록 여유롭게 정리까지 해준 마왕이 천사의 몸을 반으로 접고 허리를 퍽퍽 쳐댔다. 
 
 
 
List of Articles
날짜 제목
2022-08-31 어떤 거래
2022-06-19 즐라마감
2019-02-13 관계성
2016-12-14 가석방
2016-08-24 3마리 이야기
2016-07-11 10 years ago 6
2016-06-27 10 years ago 5
2016-06-19 10 years ago 4
2016-06-09 10 years ago 3
2016-05-24 10 years ago 2
2016-05-17 10 years ago 1
2016-05-03 둘이 화해하는 방법
2016-03-17 크리스마스김밥
2016-02-14 valentine's day
2016-01-20 군것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