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한니발 -한니발 x 2014 로보캅 -알렉스 머피
나의 판단이 "나의" 판단이 아니었음을 처음 자각했을 때 든 생각은 '그래서 내게 남은 게 뭐지?'였다. 벌써 들끓는 구더기조차 허물어졌어야 정상이었을 텐데 가족을 생각하라는 사탕발림에 인간답게 죽을 권리도 반납했고 몸뚱이가 부스러기만 남았다는 사실도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뇌에 심긴 칩이 내가 나를 그저 특수 갑옷을 입고 있는 경찰이라 생각하도록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것조차도 칩이 만들어낸 환상일지 모른다. 그러니까-자신이-조종당하고-있었던-것을-알아내서-분노하는-알렉스 머피라는 환상. 손을 잃은 연주자가 다시 영혼을 담은 연주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최첨단 기술인데, 그 정도 정교한 마인드 컨트롤 정도야 일도 아닐 것이다. 나는 이 로봇의 조종사가 아니었다. 자신을 조종사라고 생각하는 탑승객일 뿐. 아니 탑승객조차 과분한 승격이다. 로봇의 유기체 부품이라고 하면 모를까. 그러니 이것은 알렉스 머피의 죄가 아니다. 그저 경미한 로봇의 오작동-혹은 전산오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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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장난으로 초대한 저녁 식사에서 그의 슈트가 경찰청 데이터베이스와 링크가 끊어진 지금에도 사람의 DNA를 감식해 낼 수 있었던 것은 한니발의 예상 밖이었지만 알렉스는 보통의 경찰이 보일 만한 반응-경악, 체포 시도, 분노, 비난, 부정-중 어느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러니까...제가 방금 뱉은 게."
보통의 범죄자라면 당황이나 공포를 느꼈을 테지만 한니발 또한 보통의 범죄자가 비슷한 상황에서 보일 법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것까지 알았는데 계속 먹는 것은 좀 그렇네요. 기껏 만들어 주셨는데..그만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알렉스가 돌아가 신고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한니발은 확신했다. 알렉스의 불안정한 사고 흐름을 한니발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거친 디트로이트의 형사로 십여 년을 굴렀지만 타락하지 않았던 정신은 우습게도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자신이 흘리는 미끼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고 있던 한니발도 의외로 느낄 정도였다. 알렉스가 한 것은 오히려 협조에 가까웠다. 마지막 남은 양심이 그가 직접 살인에 가담하는 것만은 허용치 않았던 듯하다. 알렉스는 눈물을 흘렸다. 한니발은 고개를 갸웃했다. "알렉스. 왜 웁니까?" "..제가 지금 또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건지 알아보려고요. 그런 때는 눈물도 안 나니까요." "지금은 아무도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지 않군요. 당신 자신조차도." "그래요. 전 10%밖에 안 남은 부스러기고 그것마저 온전히 제 소유라는 확신도 없어요." 한니발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없으니 불안합니까?" -
한니발은 자신의 무릎 사이에 꿇어앉은 사람, 아니 로봇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강력하지만 유연하지는 못한 갑주는 이런 자세에서는 그 탑승객에게 불편을 제공했다. 탑승객의 특수성 때문에 사실 그것이 어떠한 불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커다란 눈망울이 치떠져 한니발을 바라본다. 탑승객은 이런 특수 슈트가 필요없었을 때에는 꽤나 보기좋은 몸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예전과 시야각이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파일로만 본 큰 키와 늘씬한 몸이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애처로울 정도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는 거대한 기계부(부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를 최대한 웅크려 자세를 잡았다. 그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것 중 하나인 오른손이 한니발의 정장 바지 여밈을 열었다. 닿아 오는 촉감이 생각한 것보다는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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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master 2014.06.11 18:13 댓글 수정 삭제
다 부서진 알렉스는 데넷이 쫓아와서 거두었음. 셀러스는 매우 못마땅해했지만 데넷은 중요한 자산이었고 자기 목숨도 살려줬으니 어쩔 수 없이 데넷이 알렉스를 데려가는 걸 용인했음. 셧다운돼있던 알렉스를 잘 고쳐서 다시 켜서 잘 달램. 알렉스는 서로 돌아가서 다시 경찰로 일하지만 정신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해직시키고 근신하게 함. 수트에 붙은 무기나 전투모드는 해제해 버림. 알렉스가 신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케어가 필요하고 당분간 경찰로 일할 수도 없는데다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음. 데넷은 점점 망가져가는 알렉스를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함. 정신의학계 최고 중 하나라는 의사에게.
한니발은 계속 서 있는 알렉스에게 맞은 편에 앉기를 권함. 알렉스는 자기는 서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고 말함. 하지만 한니발이 그럼 같이 서서 상담할까요 해서 아뇨 하고 앉음. 2초후에 우지끈 하고 고급스런 원목 의자가 내려앉음. 한니발이 아. 하고 끄덕끄덕함. 알렉스는 얼굴 붉히고 의자 잔해 치움. 한니발은 나중에 자기가 치울 테니 무시하고 상담하자고 함. 한니발은 책상끝에 걸터앉아서 알렉스를 쳐다봄. 알렉스는 아직 빨개진 얼굴로 딴데보고 엉거주춤 서서 더듬더듬 자기가 폭탄 테러로 사고당한 이야기를 시작함. 한니발은 그날 튼튼한 새 쿠션의자와 옴니코프의 특수 의료용 침대를 주문함.
다음번 상담 때 알렉스는 옴니코프에 있을 때 맨날 보던 거치대에 누워서 상담하게 됨. 데넷이 보내줬겠지만 안 보내줬더라도 한니발은 그 정도 돈지랄은 아무렇지 않게 할 것 같다. 알렉스는 로보캅으로 활동할 때 뇌에 심어진 회로가 필요한 정보들을 떠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네트워크에 접속되고 답이 나오는 것에 많이 익숙하고 의존하게 되어서 그게 없어진 지금 스스로 정보를 찾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조금 어려워진 상태. 그 얘기까지 하자 알렉스는 벌거벗을 몸조차 없는데 한니발 앞에 벌거벗은 기분이 듦. 한니발은 그 날 알렉스의 몸에 남은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됨. 그리고 알렉스의 정신상태에 흥미 생김.
느낌상 한니발이 알렉스한테 뭐 먹이는 건 일부러 알렉스 기 꺾는 짓일 것 같다.
한니발은 알렉스를 디너에 초대함. 알렉스는 ???함 내가 십이지장 이하 존나 삭제된 거 알지 않나 하면서도 오라니까 갔음. 식탁에는 정말 두 사람의 식사 준비가 되어 있음. 알렉스를 맞은편 철제 의자에 앉히고 한니발이 요리를 하나하나 내옴. 접시마다 양은 적은데 가짓수가 아주 많았음. 알렉스는 호화스러운 식탁에 기가 질렸음. 한니발은 희미하게 웃기만 하면서 호스트답게 알렉스의 접시에 무난한 것부터 요리를 덜어줌. 알렉스는 거칠지만 청렴한 경찰로 살아왔고 사고 이후 오랫동안 입에 물 한 모금 대지 못했어도 30년 이상을 평범한 미국인 입맛으로 살아왔지 이런 고급스러운 식사는 익숙하지 않음. 거기다 한니발의 요리는 먹기도 아까워 보일 만큼 음식이라기 보다 하나하나 무슨 예술작품 같았음.
"이거 진짜 먹는 건가요?"
"메제스입니다. 그리스 식 뷔페라고 설명하는게 쉽겠군요. 먹는 즐거움은 삶의 원동력 중 하나인데, 당신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을 것 같네요."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먹을 수는 없는걸요. 솔직히 당황스럽습니다."
한니발이 작은 버켓을 하나 가져다줌.
"설마.."
"평소라면 아주 경멸스러운 행동으로 보겠지만, 당신은 특수한 경우니까 용납이 됩니다."
알렉스는 조심스럽게 음식을 입에 넣어봄. 씹고 뱉는 짓은 사고 나고 얼마 후에 피자가 존나 그리워서 한 번 시도해 봤지만 오랫동안 아무것도 안 먹은 입에 너무 짜서 제대로 맛도 보기 전에 놀라서 뱉었음. 그런데 한니발의 음식은 그런 것도 없이 담백함. 맛도 맛인데 알렉스는 이런 배려 받아보는게 너무 오랜만임. 그걸 인식하고 나자 조금 두려울 정도임.